‘거듭남’의 참된 의미
많은 사람들이 ‘거듭난다’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접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거듭나겠습니다.”라는 표현을 우리는 종종 듣습니다. 특히 잘못을 했거나 물의를 일으켰을 때 “앞으로 우리가 거듭나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안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거듭남’은 이런 일상에서 쓰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거듭남’의 정확한 의미는 영어로 ‘Born again’입니다. 즉, 두 번의 탄생이 있다는 뜻이며,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6절에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태어나는 주체는 육이고, 두 번째 태어나는 주체는 영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니고데모의 방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요한복음 3장에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왜 예수님은 이런 대답을 하셨을까요?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요 20:31)”입니다. 즉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렀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부른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예수님만의 독보적인 이름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26절을 보면 세례 요한도 ‘선생님’이라고 불렸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호칭이며, 그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자와 독생자: 예수님의 두 이름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자신을 ‘인자’와 ‘독생자’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소개하십니다.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고, ‘독생자’는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 즉 ‘사람의 아들’로 소개하셨습니다. 비록 하늘에서 내려오셨지만, 마리아의 몸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은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몸으로 하늘에서 오신 이름인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독생자’는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홀로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독생자’는 ‘독생하신 하나님’, 즉 ‘아들이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부활과 거듭남의 연결
많은 사람들은 ‘거듭남’을 ‘죄 사함’과 연결시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거듭남’을 ‘부활’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3-4절에서 바울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영’으로는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부활하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1장 4절에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말합니다. 이 예수님이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영’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것은 요한복음 3장에서 말하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거듭남’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도 같은 맥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우리가 ‘부활’을 통해 ‘거듭났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육의 탄생과 영의 탄생
예수님은 육으로 한 번, 영으로 한 번, 두 번 태어나셨습니다. 육으로는 마리아의 몸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고, 영으로는 부활하심으로써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의 모델입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시편을 인용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일시적으로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지위를 잃었버렸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26장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십자기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그 몸은 무덤에 있고 그 영혼은 이사야 53장에서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라는 예언대로 음부로 가시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써 다시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도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두 번 태어나야 함을 말합니다. 첫 번째는 육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육으로 태어나는 것은 모태에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고, 영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과 성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6-8절에서는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물과 피’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성령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3장 5절의 ‘물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특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듯이, 우리도 그분의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독생자의 이름을 통한 새 생명
요한복음의 핵심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우리가 생명을 얻는 방법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입니다.
거듭남은 단순히 행동을 바꾸거나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의 진정한 의미는 영적인 탄생입니다. 모든 사람은 육신의 아버지가 있듯이,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계십니다. 거듭남은 우리의 영이 예수가 ‘독생자’인 ‘하나님의 아들’라는 이름을 통해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죽음 후 부활하심으로써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고백한 것은 맞지만, 단지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