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 생명 안내 표지판

예수님은 왜 성전에서 장사판을 엎으셨나?(‘성전된 자기 육체’) – 요한복음 6번째 글

요한복음의 독특한 표적(‘성전된 자기 육체’)

요한복음은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고, 그를 믿어 그 이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요 20:30~31 참조). 이를 위해 요한은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표적들을 기록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번째 표적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이 사건은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면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시장처럼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상인들과 그들의 동물들을 모두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구약 성경 이사야서의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권위가 있는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대답하셨는데, 제자들은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이 말의 의미를 알게됩니다.

 저자인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이 단순한 ‘성전 정화’가 아닌,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 모습을 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판하자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말씀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이 수수께끼의 답을 요한은 명확히 밝힙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21).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22). 이 표적의 진정한 의미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야 비로소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성전의 본질적 의미

구약 성경에서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성막(이동식 성전)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출 29:42). 그것은 하나님과의 소통, 즉 기도의 집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출 29: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의 암흑기인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의 본질을 왜곡했습니다. 그들은 온갖 죄를 짓고 성전에 와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렘 7:10-11). 예수님은 바로 이 예레미야의 말씀을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을 내쫓으시면서 인용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본래 목적인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독특한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지칭하셨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표적과 새로운 이해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말씀은 당시 이 얘기를 듣던 유대인들에게 황당한 발언으로 들렸습니다. 46년 동안 지어온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를 믿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려고 한다고 모함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말씀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표적은 다른 표적들과 달리 그 자리에서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경우, 혼인 잔치에서 바로 물을 포도주를 만드셨고 이를 제자들이 믿었다고 기록되었지만, 이 표적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야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났고, 제자들은 비로소 이 말씀을 ‘성전된 자기 육체’라고 이해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표적을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제자들이 표적의 의미를 알고 믿게 되는 과정을 보면, 요한복음의 중심 목적인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요 20:31)에 부합합니다.

성전이 된 그리스도의 몸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합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모퉁잇돌이 되시고, 믿는 사람들은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이 바울 서신의 내용은 종종 개인적 차원에서 해석되어 각각 개인이 하나의 성전이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성전은 개인의 몸이 아닌 모든 믿는 자들이 함께 이루는 성전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라고 말하면서, 이 “너희”는 고린도의 그리스도인 전체를 가리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전”의 개념은 단순히 개인의 몸이나 마음이 거룩해지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하나의 유기적 몸을 이루어 흠이 없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하나님의 집”에 대해 말하면서, 이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설명합니다(딤전 3:15). 그리고 바로 이어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라고 선언합니다. 이 “경건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즉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비밀(신비)을 가리킵니다.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이 비밀은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딤전 3:16)로 설명됩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의 성육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상에 육신으로 나타나 성령으로 의롭게 되어 만국에 전파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의 두 표적, 즉 가나의 혼인 잔치와 ‘성전된 자기 육체’는 모두 이 크신 ‘비밀’을 가리킵니다. 신랑과 신부처럼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가 되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하고 흠없는 성전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단순히 개인적 구원이나 영생을 넘어,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신부이자 성전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흠없이 거룩해지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성전의 완성은 에베소서가 말하듯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이 거하시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이 거하실 완전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디모데전서가 말하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의 본질입니다.

결론: 성전의 완성을 향하여

요한복음 2장의 “성전된 자기 육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닌, 그리스도와 교회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새로운 성전이 세워졌고,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믿은 사람 전체가 하나의 몸을 이루어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의 목적대로, 표적을 통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얻는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성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지어져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와 교화가 성령으로 결혼해서 흠업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 성전의 목적이자 결혼의 목적입니다. 신부인 우리 전체의 육체가 신랑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룩하게 돼서 하나님을 향해 살게 되는, 그래서 세상에 빛들로 드러나는 것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drlukedr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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