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그녀는 왜 마을로 달려갔나? – 요한복음 8번째 글

요한복음 4장: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과 한 사마리아 여인의 특별한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던 중에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두 민족 사이에는 오랜 역사적 갈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마을 근처 야곱의 우물가에서 쉬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마을에 가고 없었습니다. 이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고,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인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물을 달라 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나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내가 네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습니까?”라고 의아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생으로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그런 물을 달라고 했고, 예수님은 “가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이 “남편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은 “네 말이 맞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놀라며 “당신은 선지자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여인은 예배 장소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인은 그들의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배는 이 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할 때가 온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이라고 하자, 예수님은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그 메시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화 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이 있다. 와서 보라.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한 이유

많은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한 이유가 단지 예수님이 그녀의 과거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선지자’라고만 인정했습니다. 그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정확한 언급에 놀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한 것은 그 이후의 대화, 특히 예배에 관한 대화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사마리아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후, 앗수르 왕은 바벨론, 구다, 아와, 하맛, 스발와임 등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을 데려와 사마리아 지역에 정착시켰습니다. 이들은 각자 자기 고향의 신들을 섬기면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함께 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단순히 그녀의 결혼 생활만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의 잘못된 예배 방식을 지적하셨습니다. 여인의 개인적인 삶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배 생활은 모두 혼란스러웠습니다. 여인이 남편을 여러 명 바꾼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들도 여러 신을 섬겼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마리아 여인이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이는 단순히 그녀의 결혼 생활만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의 잘못된 예배 방식이 핵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즉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런 깊은 영적 통찰력을 통해 여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의미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단순히 예배 장소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즉, 예루살렘이든 사마리아 산이든 상관없이 진심으로 예배하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의미는 더 깊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진리)에 따라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4-5절에 따르면, 신자들은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됩니다. 즉, 신자 자신이 성전이 되고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건물(성전)과 제사장이 구분되었지만, 이제는 신자 자신이 둘 다 되는 것입니다.

1)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전도

로마서 15장 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일까요?

구약 시대에는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린다고 말합니다. 이는 물론 이방인을 죽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이방인들도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과의 대화 후 마을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물동이까지 버려두고 달려갔습니다. 이는 그녀가 직업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순간 무엇이 더 중요한지 깨달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전도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이 전도 활동이 단순히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이나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전도할 때 그것이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을 위한 물질적 지원

빌립보서 4장 15-18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신의 선교 활동을 물질적으로 지원한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지원을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함께 직접 전도 여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물질적 지원을 통해 복음 전파에 동참했습니다. 이런 헌금과 지원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 즉 예배의 일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전임 선교사나 목회자가 될 수는 없지만, 복음 전파를 위해 물질로 지원하는 것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지원이 단순한 의무감이나 형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질 때 진정한 예배가 된다는 점입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는 예배

로마서 12장 1-8절에서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단지 “죄를 짓지 말고 거룩하게 살라”는 의미로만 이해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무엇일까요?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각자는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 은사는 한 몸을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의 핵심입니다.

즉,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의 은사를 따라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는 데 기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는 가르치는 일, 섬기는 일, 구제하는 일, 위로하는 일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의 공통점은 내 힘이나 내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진리)에 따라 행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양식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 즉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인의 다양한 ‘신’들과 참된 예배

오늘날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여러 신을 섬기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현대인들이 다양한 형태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조상신을 섬기거나, 무당을 찾거나, 절에 가거나, 교회에 가는 등 여러 종교적 행위를 혼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급할 때는 하나님을 부르고, 또 어떤 때는 부처님을 찾고,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또한 많은 미신과 금기 사항들(문지방 밟지 않기, 벽에 바늘 꽂지 않기, 밥 먹을 때 말하지 않기 등)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의 발달로 이런 전통적인 미신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돈’을 최고의 가치로 섬깁니다. 또한 ‘과학과 이성’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일부 과학적 이론(예: 진화론)은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확실한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사람들은 또한 때에 따라 다른 것들을 믿습니다. 연인을 만나면 그 사람을 믿고,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면 그를 믿었다가 실망하고, 또 새로운 지도자에게 기대를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은 계속 바뀌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무언가를 믿고 의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인들도 사마리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도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라는 뜻입니다.

참된 예배는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고, 각자의 은사를 따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물질적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지원하는 것 모두가 예배의 일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할 때 참된 예배가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양식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4장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참된 생명의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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