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을 통해 본 현재 중동 정세 – 요한복음 15번째 글

**이 글은 2024년 4월 21일에 있었던 강연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2024년 4월, 중동 정세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을 가했고, 이스라엘도 이에 맞서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처음에는 미국과 서방의 만류로 이스라엘이 대규모 보복을 자제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4월 16일 요인 암살과 19일 이란 본토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확전될 것인지 아니면 자제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경을 아는 입장에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늘은 요한복음 7장의 초막절 이야기와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들 사이의 관련성을 살펴보겠다.

하마스 전쟁의 네 가지 원인 분석

영토 분쟁 – 기본적인 갈등 구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원인을 분석해보면 여러 층위가 있다. 첫 번째이자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영토 분쟁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땅의 경계가 정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분쟁이 지속되어 왔다.

아브라함 협정과 국제정세의 변화

두 번째 원인은 국제정세의 급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수교를 맺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소위 ‘아브라함 협정’이 확대될 조짐을 보였다. 이 협정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인데 왜 싸워야 하는가’라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미 몇 개국이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은 상황이었다.

하마스 입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하게 되면 그동안 지원해주던 아랍 국가들이 등을 돌리게 되어 팔레스타인이 완전히 고립될 것을 우려했다. 이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절망적 판단으로 이어져 전쟁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내부의 심각한 분열

세 번째 원인은 이스라엘의 국내정세였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이 매우 낮았고, 이스라엘 사회는 거의 내전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분열되어 있었다.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였다. 이런 허점을 하마스가 노렸다는 분석이 있다.

종교적 명분 – 알아크샤 성전의 신성함

네 번째이자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종교적 갈등이었다. 이스라엘의 일부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전에서 의도적인 도발 행위를 했다. 이슬람교도들이 양탄자를 깔고 기도하고 있는 곳에 군화를 신고 들어가 밟아버리는 등의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데모 참가자들이 명동성당으로 들어가면 경찰이 함부로 체포하지 못했던 것처럼, 종교적 공간에는 일종의 불가침 영역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강제로 끌고 나갔다.

하마스는 바로 이 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단순히 영토 문제만 내세워서는 이슬람 세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종교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이번 공격의 암호명을 ‘알아크샤 홍수’라고 정했다. ‘알아크샤’는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성전의 이름으로, 황금돔으로 된 이 사원은 마호메트가 승천한 곳으로 여겨져 이슬람교의 제3성지로 불린다.

이 종교적 명분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전쟁이 한참 진행된 후 아랍 방송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쟁의 첫 번째 원인으로 ‘이스라엘이 이슬람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

이란의 개입과 중동 세력 구도의 변화

이란을 중심으로 한 ‘저항의 축’

현재 중동의 세력 구도를 보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복잡한 포위망이 형성되어 있다. 북쪽에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남쪽에는 예멘의 후티 반군, 동쪽 시리아와 이라크에는 다양한 친이란 민병대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모두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란은 현재 지구상에서 유일한 신정국가다. 대통령이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혁명회의’와 그 의장인 최고지도자가 가지고 있다. 과거 호메이니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알리 하메네이가 이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이란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혁명 수출을 추진한다. 즉, 이슬람 혁명의 이념을 다른 나라에도 전파하려는 것이다.

5차 중동전쟁의 가능성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이란의 직접 개입이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불렸는데, 하마스는 나라가 아니라 정당이기 때문에 일종의 ‘조폭과의 싸움’ 같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란이라는 국가가 개입하는 순간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5차 중동전쟁’이 된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이란 지역에 호르무즈 해협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과거 오일쇼크와 같은 경제적 파장이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이런 사태는 절대 피하고 싶을 것이다.

성경 예언 속의 이란 – 에스겔서 38장의 의미

바사(페르시아)로 기록된 이란

성경 에스겔서 38장 1-6절에는 놀라운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들과 함께한 방패와 투구를 갖춘 바사와 구스와 붓과…”

여기서 ‘바사’는 페르시아, 즉 현재의 이란을 가리킨다. ‘구스’는 에티오피아, ‘붓’은 리비아를 의미한다. 그리고 ‘곡과 마곡’, ‘로스와 메섹과 두발’은 현재의 러시아 지역으로 해석된다. 이 예언에 따르면 러시아, 이란, 리비아, 에티오피아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한다고 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1980년경 실제로 이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리비아에서는 카다피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미에서 친소로 정책이 바뀌었고, 에티오피아에서는 셀라시에 황제가 축출되면서 역시 친소 정권이 들어섰다. 이란도 호메이니 혁명으로 친미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반미 신정국가가 되었다.

그때 많은 성경 학자들이 “이제 에스겔서 38장의 예언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예언의 성취는 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성경적 이해

대체신학에서 세대주의로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A.D. 135년 바르 코크바 반란이 진압된 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추방되었다. 약 18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다.

4세기 어거스틴은 이런 현실을 보고 대체신학을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끝났고, 이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이 관점에서는 성경의 이스라엘 관련 예언들을 모두 비유나 영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기독교 3대 서적 중 하나인 어거스틴의 『신국론』(하나님의 도성)의 핵심 내용이었다.

그런데 1850년경 다비(J. Nelson Darby)라는 학자가 세대주의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이스라엘은 끝나지 않았다. 성경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주장이었다.

1917년 스코필드가 발행한 주석 성경에는 놀라운 예언이 담겨 있었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정확히 31년 후인 1948년에 실제로 이스라엘이 독립했다. 이 사건은 많은 개신교도들, 특히 미국의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세대주의적 해석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정치적 이스라엘과 성경적 이스라엘의 차이

하지만 1948년에 세워진 이스라엘이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그 이스라엘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예수님 승천 직전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사도행전 1:6)라고 물었을 때, 그들이 기대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였다.

현재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네타냐후 총리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성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현재 이스라엘에는 성전이 없다.

시오니즘 운동의 목표도 ‘성전 재건’이 아니라 ‘안전한 국가 건설’이었다. 초대 총리 벤구리온이 구약 시대 다윗이나 솔로몬 때의 영토 회복을 추구한 것도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전략적 필요 때문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경계선은 너무 좁아서 국방상 취약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종교적 현실

성전 재건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레디’라고 불리는 정통 유대인들이 그들인데, 현재 이스라엘 연정에 참여하고 있어서 종종 강경 정책을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국민들은 성전 재건에 별로 관심이 없다.

현재 이스라엘 유대인 중에서 실제로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의 비율은 높지 않다. 동성애자도 많고, 세속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이슬람 성전을 밀어버리고 우리 성전을 세우자’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초막절의 성전 중심적 성격

성전에서만 지낼 수 있는 절기

요한복음 7장 37-38절의 배경인 초막절은 단순한 가정 행사가 아니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신명기 16장 13-17절에 따르면 초막절은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지내야 하는 절기였다. 즉, 성막이나 성전이 있는 곳에서만 지낼 수 있었다. 개인이 집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모여서 지내는 민족적 절기였다.

처음에는 실로에 있던 성막을 중심으로 했고,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후에는 그곳에서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성전이 없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 지낼 수밖에 없다.

민족 제사와 개인 제사의 차이

절기 때 드리는 제사는 개인이 드리는 제사가 아니었다. 민수기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로 드리는 제사였다. 개인이 와서 “초막절이니까 제사 드려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이름으로 드리는 제사였다.

2024년의 특별한 의미

성전 재건의 현실적 가능성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되고 이제 이란까지 개입하면서,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전이 파괴되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약 이란이 전쟁에서 ‘성지 회복’을 명분으로 내걸게 된다면, 과거 십자군 전쟁과 비슷한 양상이 될 수 있다.

십자군 전쟁도 ‘성지 순례’를 방해받았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당시에는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성지 순례’였지만, 지금은 이슬람 성전이 있기 때문에 ‘성전 보호’ 또는 ‘성지 탈환’이 명분이 될 것이다.

요한복음 7장의 새로운 해석 가능성

바로 이런 이유로 요한복음을 2024년에 공부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이 초막절에 하신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이 지금 시대에 어떤 의미인지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전이 다시 세워지면 절기를 제대로 지낼 수 있게 되고, 그때 초막절의 진짜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린도전서 5장 7절의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처럼 교회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종말론에 대한 경고와 바른 이해

뮌스터의 비극과 현실 도피의 위험성

현재 중동 상황을 보고 “주님이 곧 오신다”며 종말론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주장들은 종종 현실 도피로 이어졌다.

16세기 독일 뮌스터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재세례파 사람들이 “예수님이 곧 오신다”며 그곳에 모여 천년왕국을 건설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루터파와 카톨릭의 연합군에 의해 모두 학살당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이 사건의 여파로 독일에서는 천주교와 루터파 모두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루터는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 동정적이었지만, 그들이 개종하지 않자 죽기 1년 전에 유대인을 극도로 비판하는 책을 썼다. 이런 반유대 정서가 후에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는 점을 이스라엘에서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민족적 사건과 개인적 적용의 구분

지금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된 이야기다. 개인의 구원이나 휴거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성전이 세워진다고 해서 당장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7년 대환난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회복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38장의 사건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다. 현재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성경적 의미의 완전한 회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맺는 말

현재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성경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지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문제는 앞으로 더욱 주목해서 지켜봐야 할 중요한 사안들이다.

하지만 이것을 개인적인 종말론이나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모든 종말론적 해석에는 나름대로의 노림수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대신 하나님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를 지혜롭게 분별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7장의 초막절 이야기는 앞으로 더욱 깊은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의 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성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관련된 일차적 의미가 있고, 그 다음에 교회와 관련된 의미가 따라올 것이다.

drlukedr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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