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왕’이 어떻게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을까? – 요한복음 네번째 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이름을 통한 생명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사도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요한은 자신이 왜 이 복음서를 기록했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그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썼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읽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나 예언자로 알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믿음을 통해 사람들이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요한의 이러한 의도는 복음서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 중에서도 특히 예수님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 됨을 드러내는 사건들을 선택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미: 분리된 두 단어

우리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의 이름처럼 사용합니다. 마치 성과 이름을 부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그분의 직함 또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예수’가 그분의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그분이 누구인지를 설명해주는 칭호입니다.

이름은 단순히 누군가를 부르기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와 같은 별칭이 그 사람의 역할이나 정체성을 더 잘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예수님의 역할과 사명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단순히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진 분이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요한복음의 ‘생명’을 얻게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리스도와 메시야: 같은 의미의 다른 언어

요한복음 1장에는 안드레가 자신의 형 시몬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어서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습니다. 이 구절은 ‘메시야’와 ‘그리스도’가 같은 의미의 다른 언어 표현임을 알려줍니다.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하며, ‘그리스도’는 같은 뜻을 가진 헬라어(그리스어) 단어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특별한 직책을 맡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구별했습니다. 이 ‘기름 부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선택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 대표적인 직책으로는 왕, 제사장, 그리고 때로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구별되어 선택된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과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특히 ‘왕’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그리스도: 구약의 예언

요한복음 1장에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난 후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왕’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12제자인 빌립은 친구인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장차 올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예언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사무엘하 7:16)고 약속하신 것은, 다윗의 자손 중에 영원한 왕국을 다스릴 메시아가 올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뜬 ‘그의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을 때, 헤롯 왕은 대제사장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유대인의 왕’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민수기 24장의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예언이 바로 동방박사들이 따라온 별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와 영혼의 구원자: 두 가지 모습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하면 영혼의 구원자로서의 모습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는 주로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는 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다루고 있으며,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그 그리스도(왕)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영혼의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 모든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지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복음 18:36)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의 왕권은 단순한 정치적 권력이 아닌 영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왕인 그리스도가 어떻게 생명을 줄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입니다.

나귀 타신 왕: 예상과 다른 그리스도

요한복음 12장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사람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치며 그를 왕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권력과 힘을 상징하는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스가랴 9장의 예언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를 성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2장 16절에 따르면,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영광을 얻으신 후”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를 의미합니다. 당시 사람들과 제자들조차도 메시아가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 올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왕권을 행사하셨고, 그의 진정한 승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죽음과 부활을 통한 생명: 선한 목자의 희생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소개하면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님의 사명이 단순한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단순히 ‘부활한 자’가 아니라 ‘부활’ 자체로 소개하십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이름입니다.

요한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신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이름, 즉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을 때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풍성한 생명: 은혜와 진리의 충만

예수님은 단지 생명을 주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풍성한 생명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7절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와 진리’가 바로 풍성한 생명의 핵심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은혜’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 그리고 세상에 대한 참된 이해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고(은혜), 동시에 우리의 실존과 목적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은혜와 진리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으로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생명의 실체: 하나님과의 관계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생명’은 단순한 육체적 존재나 호흡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진정한 생명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생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 탄생(거듭남), 영적 생명의 유지(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 그리고 영생(영원한 생명).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단순히 시작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깊어집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포도나무요 우리가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그 안에 거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우리의 생명이 더욱 풍성해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육체적 죽음을 넘어 영원히 지속됩니다.

요한복음의 초대: 그리스도를 알고 생명을 누리는 여정

요한복음은 단순히 교리적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그 여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더 깊이 알아가는 여정이며, 그분을 통해 주어진 생명을 더 풍성히 누리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약속된 그리스도라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 그리고 특히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긴 은혜와 진리를 더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의 생명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우리의 삶은 점점 더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영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비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된 생명이 은혜와 진리를 통해 풍성해지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으로 완성되는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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