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을 처음 공부할 때 느끼는 것은 이 책이 약간 불친절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일곱 절기의 하나인 초막절이 나오는 등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론 요한복음에는 좋은 구절이 많아서 개별 구절을 떼어내서 외우거나 전도할 때 사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맥락이나 흐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도 많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도 어렵거니와, 요한복음 7장에는 ‘초막절’이라는 절기를 중심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설명되고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절기와는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님이 초막절 날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오리라’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절기의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유대인이 지키는 절기와 우리 같은 이방인이 지키는 절기, 또 유대인과 이방인 말고 하나님의 교회가 지키는 절기는 서로 다르다. 유대인의 절기와 우리가 지키는 명절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교회가 지키는 절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일곱 절기
이스라엘은 일년에 일곱 개의 절기를 지킨다. 봄에는 유월절(1월 14일)과 무교절(1월 15일부터 일주일)이 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할 때 ‘넘어간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이 정월 14일에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좌우 설주 문인방에 피를 바르라고 하셨다. 그 피가 있는 집은 하나님이 넘어가시고, 그렇지 않은 집의 장자는 모두 죽었다. 무교절은 그 이후 일주일 동안 누룩이 없는 떡과 쓴 나물을 먹는 절기다.
여름에는 초실절과 오순절이 있는데, 이 두 절기는 정해진 날짜가 없다. 초실절은 곡식이 처음 나는 시기이고 오순절은 50일 후에 온다. 7일씩 7주가 49일이고, 초실절과 오순절을 다 합쳐서 ‘칠칠절’이라고도 한다. 언제 곡식이 나는 첫 시기인지 날짜를 규정하기 어려워서 고정된 날짜가 없다. 예수님 당시를 보면 유월절이 있고 나서 삼일 있다가 초실절이 있었다.
가을에는 나팔절(7월 1일), 속죄일(7월 10일), 초막절(7월 15일부터 일주일)이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을 할 때 초막으로 집을 지어서 거기서 지냈다고 해서 초막절 행사를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광야에서 이런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초막절이 지켜진 것은 가나안 땅에 와서였을 것이다. 초실절과 오순절도 농사를 안 지었기 때문에 가나안에 와서 지켜졌을 것이다.
신명기 16장에서는 이를 세 그룹으로 나눈다: 무교절, 칠칠절(초실절+오순절), 초막절이다. 이 절기들은 모두 제사를 드리는 절기로,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8-29장에 구체적인 제사법이 기록되어 있다. 소는 몇 마리, 어떤 동물은 몇 마리, 그 동물을 어떻게 드리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명절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깨달음
어렸을 때 설날은 세뱃돈을 받는 날이었고, 추석은 성묘를 가는 날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설날이 더 좋았는데 현금이 들어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된 것은 개인이 생각하는 명절의 의미와 전체 민족이 지키는 명절의 원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은 핵가족 시대가 되어 설날이나 추석에도 해외여행을 가거나 놀러 간다. 조상에게 성묘를 하는 원래 의미에 부합하게 하는 집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기의 대상: ‘너’라는 표현의 의미
신명기 16장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네가 애굽에서 나왔다”고 단수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개인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한 사람으로 보는 표현이다.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다’고 했을 때, 그 한 사람이 나온 게 아니고, 이 절기를 세월이 한참 지나서 이 사람들이 다 죽고 나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킨다. 그럼 그 절기를 왜 지키느냐? 사람 전체가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개인에게 의미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삼일절, 광복절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시대에 살지 않았지만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로 지킨다. 내가 해방을 받은 게 아닌데 왜 광복절을 지킬까? 이것은 우리나라 국가, 국민, 우리 민족 전체가 역사적으로 겪은 문제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절기는 개인이 아닌 전체 민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창세기에서도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이라고 하여, ‘사람’은 단수지만 ‘그들’은 복수로 표현한다. 성경은 전체를 하나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26절에는 그 사람을 ‘그들’이라고 해서 복수 개념이고, 27절은 남자 여자 따로따로, 아담과 하와 개인이다.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칙
성경을 볼 때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구절도 개인의 신앙생활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을 때 인용한 신명기 8장 3절인데,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개인을 의미하는지 전체 사람을 의미하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염두에 두고 기록된 것이다.
바울 서신도 대부분 교회 서신이다. 디모데전서 후서, 디도서 같은 경우도 개인적으로 부탁한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용이 전체 교회를 한 사람으로 놓고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목회 서신이라고 한다. 교회라는 공동체 전체를 한 사람으로 놓고 설명한 것인데, 이를 개인의 도 닦는 내용으로만 보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한테 잘 보여서 개인상을 받을까”하는 오류에 빠진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 가는 것이 성경 얘기인 줄 알고 있다. 이런 얘기가 없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이게 목표가 아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서 생육하고 번성해서 그 전체를 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하나님의 목표다. 하나님의 뜻이 그 하나님의 집안, 그 교회에 어떤 의미를 갖느냐가 중요하고, 구약도 모두 그렇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인생 단계
호세아 11장에서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고 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한 사람으로 보았을 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뜻이다. 출애굽할 때가 바로 이스라엘의 어린 시절이었다. 개인도 10살 때가 있었고, 20살 때가 있었듯이, 이스라엘이라는 전체를 한 사람으로 놓고 보면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서에는 “처녀 이스라엘”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예레미야 때에 이게 발표된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 전체를 한 사람으로 놓고 볼 때 어린 시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죽고 나서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을 때 처녀 시절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우리 몸도 10년 전 세포는 대부분 다 바뀌었지만 여전히 같은 사람이듯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도 세대가 바뀌어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성장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절기의 세 가지 특징
1 대상: 전체를 한 사람으로 보는 관점
절기의 대상은 개인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너희의 조상들”이라고 복수로 시작했다가 곧 “네 하나님”, “너를”, “네 마음이”라고 단수로 바뀌는 것이 그 증거다. 이는 개인이 해당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그런 의미를 갖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2 장소: 하나님이 택하신 곳 (성전)
절기는 각자 집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택하신 곳, 성전에서 지내야 한다. 우리는 조상의 무덤에 가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전에 모인다. 신명기 16장에서도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한다. 이것이 개인 행사라면 자기 집에서 해도 되지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공적인 장소인 성전이 필요하다.
3 시간: 과거형과 미래형이 함께 존재
우리나라의 모든 절기는 과거를 기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절기는 특별하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과거형(출애굽 기념), 초실절과 오순절은 현재 반복형(매년 수확 감사),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은 미래형 절기다. 이처럼 절기 안에 예언의 기능이 있는 것은 다른 나라 절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특징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과거형으로만 끝나지 않고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들을 예언하는 기능을 갖는다.
미래형 절기의 의미
1 나팔절: 그리스도의 재림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일곱째 나팔이 불릴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영원히 왕 노릇 하시리라”고 선포된다. 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다. 나팔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불리는데, 시내산에서도 나팔 소리가 들렸고 휴거 때도 나팔이 불리며, 계시록에는 아예 일곱 나팔이 등장한다.
나팔이 불리고 나면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타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다스리게 된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데, 바로 그들이 찌른 그분을 보고 애곡하는 일이다.
2 속죄일: 이스라엘의 회개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찌른 그분을 보고 크게 애통할 것이다. 스가랴 12장과 요한계시록 1장에 이 장면이 예언되어 있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모든 족속’은 이스라엘 족속을 가리킨다.
이때서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된다. 로마서 11장에서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예언했다. 그리스도가 하늘 시온에서 땅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고 그들의 죄를 없이하는 속죄일의 의미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초막절: 천년왕국
속죄 이후에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시대가 온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천년왕국’이며, 초막절의 완성된 의미다. 레위기 23장에 보면 초막절에 대해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고 했는데, 이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속성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예레미야 33장에서 하나님은 “낮과 밤이 있는 한 다윗에 대한 언약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릴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 성경을 보는 사람 중에 거의 90% 이상이 이스라엘이 없어졌다고 주장하지만, 낮과 밤을 없앨 수 없는 이상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된다.
절기에 대한 내용이 앞으로 이루어질 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긴 있으나, 계속 성전 얘기가 나오고 이스라엘 문제가 나오면 그냥 종말로 가 버린다. 이 의미도 제대로 모르기도 하거니와, 불안을 조성하고 열심히 살라고 하거나 돈을 빼앗을 때 그런 말을 한다. 전체 절기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이런 말은 항상 개인으로 간다.
잘못된 해석의 위험성
절기를 개인적으로만 해석하거나 단순히 종말론적으로만 보면 성경의 본래 의미를 놓친다. 예언이 나오면 무조건 종말로 해석하거나 개인의 신앙생활에만 적용하려고 하는데, 이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아이와 같다. 어렸을 때는 나 밖에 모르지만, 철이 들면서 자기 집안의 형제들이나 남도 생각하며 눈치도 보고 상황도 이해하게 된다. 절기나 예언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개인으로 이해하거나 종말로 이해하는 문제가 생긴다.
성경의 절기는 개인의 신앙생활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불안을 조성하는 종말론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향한 계획의 표현이다. 바울 서신도 대부분 교회 서신인데, 이를 개인의 도 닦는 내용으로만 보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한테 잘 보여서 개인상을 받을까”하는 오류에 빠진다.
결론
이스라엘의 절기를 이해하려면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대상은 개인이 아닌 전체 민족을 한 사람으로 보는 관점이고, 장소는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이며, 시간은 과거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는 기능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요한복음의 절기 이야기와 교회에 주어진 절기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절기는 종말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전체 계획 속에서 각 시대마다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