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 생명 안내 표지판

왜 탕자의 아버지는 멀쩡한 아들을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했나? – 요한복음 9번째 글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표적들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와 달리 표적을 행하신 목적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기록하면서도 그 이적의 목적이나 의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표적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은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표적 중에서 특별히 몇 가지를 선택하여 기록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표적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표적들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두 가지 특별한 표적

요한복음 4장과 5장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표적이 연속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표적은 요한복음의 목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첫 번째 표적은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일입니다. 요한복음 4장 46-54절에 기록된 이 사건은 갈릴리 가나에서 일어났습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와서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그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십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표적을 통해 믿음을 갖게 하려는 요한복음의 취지와 일치합니다. 신하는 계속해서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간청했고, 예수님은 직접 가지 않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갔고, 그의 아들이 정확히 그 시간에 나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표적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입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 기록된 이 사건은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못가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곳에는 많은 병자들이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에 38년 동안이나 병에 시달려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오랜 병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병자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고, 그 사람은 즉시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이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 일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이 두 표적을 보이신 이후에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한복음 5:21). 이 말씀은 두 표적의 의미를 해석하는 핵심 키가 됩니다.

‘죽은 자들을 살린다’는 표현의 의미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의 병을 고치셨을 뿐, 실제로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은 아닌데 왜 “죽은 자들을 살린다”라고 표현하셨을까요? 이것은 언뜻 보기에 모순처럼 보입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사람은 실제로 생물학적 죽음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은 거의 죽게 되었다고 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고, 38년 된 병자는 오랜 병으로 거의 움직일 수 없었지만 분명히 살아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학에서는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없을 때를 죽음이라고 판정합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이 두 사람은 ‘죽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이 두 경우를 가리켜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한복음 5:25)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과 ‘생명’의 개념을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죽음’은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생명’ 역시 단순한 육체적 존재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여러 종류의 생명

 성경에서 ‘생명’이라는 단어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여러 차원과 의미로 사용됩니다. 우리 몸이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상태인 생명이 있습니다.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하며 신체 기능이 작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의학에서 주로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형태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연결된 상태의 생명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9에서는 “모든 영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우리의 육신적 아버지와 구별되는 영적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님을 향해 사는 상태의 생명도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한 새 사람”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이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다양한 생명을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3장에서는 ‘거듭남’을 통해 영적 생명을 얻는 것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한복음 3:6)라는 말씀은 우리가 두 번 태어나야 함을 암시합니다. 첫 번째는 육체적 탄생이고, 두 번째는 영적 탄생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5장에서 말하는 생명은 조금 다른 차원을 다룹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영적 차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까지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생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 영성을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탕자의 비유로 이해하는 생명

이러한 생명의 다양한 측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죽음’과 ‘생명’의 의미를 관계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미리 유산을 받아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모든 재산을 탕진한 후 극심한 기근을 만나 돼지가 먹는 열매로도 배를 채우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누가복음 15:21)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아들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누가복음 15:24). 여기서 핵심은, 아들은 생물학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계속 살아있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죽은’ 것으로 여겨졌고, 그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살아났다’고 표현된 것입니다.

이 비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과 ‘생명’이 단순히 육체적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가 ‘죽음’이고, 그 관계가 회복된 상태가 ‘생명’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적 생명이 아니라, 관계적 측면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신 일을 ‘죽은 자들을 살리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설명: 죽음에서 생명으로

요한복음의 이런 개념은 바울의 서신서, 특히 에베소서에서 더 자세히 설명됩니다. 에베소서 2장은 ‘죽음’과 ‘생명’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에베소서 2:1-5)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죽었다’는 표현이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지입니다. 바울은 이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즉,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방식과 마귀의 영을 따라 살아갔던 상태를 ‘죽음’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 설명에서 중요한 점은 ‘죽음’이 단순히 영적인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서의 죽음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에베소서 2장 후반부에서는 이것을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2:15-16)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으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설명은 생명이 단순히 개인적 영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몸이 함께 참여하는 변화임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이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여러 사람이 함께 “한 새 사람”으로 지어지는 공동체적 차원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게 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표현이 ‘복수’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 “자기가 원하는 자들”처럼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영혼 구원을 넘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공동체적 생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4의 새로운 이해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복음 5:24을 다시 읽어보면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구절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된다’는 의미를 넘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살 수 없는 상태(사망)에서 하나님을 향해 살 수 있는 상태(생명)로 이미 옮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우리의 영뿐만 아니라 몸까지 포함한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은 생명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보여줍니다. 거듭남을 통한 영적 생명, 하나님을 향해 사는 육체적 생명, 그리고 마지막 날에 있을 육체적 부활의 생명까지 모든 종류의 생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신 사건은 단순한 육체적 치유를 넘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구원하셔서, 우리 전체가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은 생명의 다양한 차원을 보여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풍성한 생명의 의미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drlukedrkorean

Recent Posts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그녀는 왜 마을로 달려갔나? – 요한복음 8번째 글

요한복음 4장: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과 한 사마리아 여인의 특별한 만남이 기록되어…

2주 ago

거듭남의 진정한 의미: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이름을 통한 영의 탄생 – 요한복음 7번째 글

'거듭남'의 참된 의미 많은 사람들이 '거듭난다'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접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행동을…

3주 ago

예수님은 왜 성전에서 장사판을 엎으셨나?(‘성전된 자기 육체’) – 요한복음 6번째 글

요한복음의 독특한 표적('성전된 자기 육체') 요한복음은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고, 그를…

4주 ago

가나 혼인 잔치에서 신랑과 신부는 누구일까? – 요한복음 5번째 글

가나 혼인 잔치에서 신랑과 신부는 누구일까? - 요한복음 다섯번째 글   표적의 목적과 요한복음의 구조…

1개월 ago

‘이스라엘의 왕’이 어떻게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을까? – 요한복음 4번째 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이름을 통한 생명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사도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2개월 ago

요한복음 1장의 두 가지 ‘하나님의 어린 양’ – 요한복음 3번째 글

요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옵니다. 이 두 장면은 불과…

2개월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