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구약의 제사에서 예수의 완전한 구원까지 – 요한복음 두번째 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는 바이블에서 죄사함을 설명할 때 핵심이 되는 구절입니다. 특히 복음을 전할 때 빠지지 않고 인용됩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죄사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이라는 표현은 한 민족이나 특정 집단이 아닌,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의 제사 제도와 연결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의미를 제시합니다.

세례 요한이 이 구절을 선포했을 했을 당시에 그의 주변에는 대부분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에 정통했기에, 이 말씀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죄사함이라는 결과적 측면만이 아니라, 어떻게 그 죄사함이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과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이 구절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가진 보편성과 완전성, 그리고 그 방식의 독특성을 모두 담고 있는 중요한 선언이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와 차이점: 어린 양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구약 성경에서는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에 어린 양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다섯 가지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태워서 드리는 번제, 음식으로 드리는 소제, 화목을 위한 화목제, 죄를 용서받는 속죄제, 그리고 허물을 처리하는 속건제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 즉 ‘속죄제’에서는 어린 양이 아닌 염소를 제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4장과 16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듯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염소를 제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양’을 떠올릴 때 유월절을 연상하지만, 이는 다른 맥락입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Lamb)은 영어로도 구분되며, 보통의 양(Sheep)과는 다릅니다. 이 유월절 어린 양은 1년 이내의 것을 사용했으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문설주에 바른 피와 연관된 것으로 죄사함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약 성경의 엄격한 제사 규정들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의미로 통합되고 변화됩니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변경이 아니라 구원의 방식과 의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에서의 변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제사의 제물이자 제사장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셨습니다. 이는 히브리서를 통해 자세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복잡한 제사 제도가 예수님 한 분을 통해 완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구약에서는 제물의 종류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고, 각각의 목적에 따라 다른 제물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모든 제물의 역할을 하시게 됩니다. 때로는 양의 역할을, 때로는 염소의 역할을, 또 때로는 송아지의 역할을 하시는 등 모든 제사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제물이면서 동시에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9장 11-12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장소도 혁명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이나 땅의 성소가 아닌, 하늘의 성소에서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이는 제사의 영적 차원을 한층 더 높이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그 효력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구약의 제사 제도가 가진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구원 방식을 보여줍니다.

구약과 신약의 핵심적 차이 : 제사의 본질적 변화

구약과 신약의 제사 제도는 세 가지 핵심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첫째, 정결의 대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히브리서 9장 13-14절에 따르면, 구약의 제사는 육체의 정결을 목적이었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는 사람의 육체를 정결케 했는데, 이는 범죄가 육체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이는 단순한 외적 정결이 아닌,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둘째, 제사의 빈도에서 극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은 구약의 제사가 매년 반복되어야 했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대속죄일에는 매년 같은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은 이를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셋째, 죄를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도 달라졌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매년 죄를 기억나게 했지만, 그리스도의 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점은,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는 방식으로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구원의 본질적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구약의 제사에서 영원하고 완전한 신약의 구원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과 그 의미: 성령 세례의 중요성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하여 중요한 두 가지 증언을 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선포한 것이고, 둘째는 성령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한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한 근거입니다. 이는 단순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선포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3절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과도 연결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 2:28)” 하나님께서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시는 것이 요엘서에서 예언한 메시아(그리스도)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임을 목격함으로써,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한 것은 단순히 죄사함의 메시지를 넘어, 예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는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완전히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언약의 순서: 성령 세례를 통한 생명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기 교회는 세례 요한의 구원의 순서와 같았습니다. 먼저 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은 후에 성령을 받는 순서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베드로도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에서 유대인이 아닌 고넬료가 복음을 듣는 장면에서 이 순서가 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는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 세례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물세례가 뒤따랐습니다. 이는 단순한 순서의 변경이 아닌, 구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베드로가 이 경험 후에 물세례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수정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그는 “물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세례의 의미를 죄사함이 아니라 부활과 연관시켰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생명 얻는 회개’라는 새로운 개념을 낳았습니다. 성령 세례를 통해 먼저 생명을 얻고, 그 생명 안에서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 진정한 회개라는 이해가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이는 골로새서 1장 13-14절에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표현된 것처럼,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죄사함을 얻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의 깊은 의미

요한복음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죄사함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본질적 정체성과 사역의 총체적 의미를 나타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구절이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더 큰 맥락의 일부라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말하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라는 구절은 예수님이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존재가 아닌, ‘성자 하나님’ 자체이심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순서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죄사함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의 나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죄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히브리서와 골로새서의 구절과도 일치하며, 신약의 새 언약이 가져온 근본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런 깊은 이해는 우리의 구원이 단순히 죄사함을 받는 것을 넘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더 풍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생명’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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